아버지가 보건소에 다녀오신 날

by 익명
|
익게2
|
조회 303
|
None
2020/11/20 12:55
2020/11/20 12:55

아버지가 보건소에 다녀오신 날이 기억난다.

오십보다 육십에 가까워진 아버지가

백칠십보다 백육십에 가까운 아들보다

허약하고 왜소했던 날이라고 기억한다.

 

가족과 세상이 아버지를 의심했던 까닭은

신천지나 다단계를 다녔기 때문이 아니라

이태원과 광화문에 있었기 때문이 아니라

회사내의 확진자와 가진 회의 때문이었다.

 

그렇게 마스크를 끼고 떨어져 앉은 우리였지만

가족이란 관계에서 주고받은 사랑과 연민을

격리라는 상황에서 다가왔던 불안과 공포를

벽 하나와 마스크 하나로 막거나 가릴순 없었다.

 

전염병, 전쟁과 같은 위기상황은

그들이 우리를 직접 해친다는 점에서 무서우며

우리가 스스로 해친다는 결과를 내어 악랄하다

 

봉쇄가 사람을 막고 마스크가 비말을 가려도

피곤과 짜증, 공포와 혐오를 어찌못해

가족과 사회, 나라와 세계는 공격받고

사랑과 연민, 우정과 신뢰는 무너진다

 

아버지가 보건소에 다녀오신 날

우리 가족을 공격했던 개XX

코로나가 아닌 불안감이었음을

우리는 다음날 저녁에 알았다.

 

사람이 사람답게 대접받기가

사랑을 사랑으로 돌려받기가

갈수록 어려워지는 세상이다

 

그러나

 

아버지가 보건소에 다녀오신 날

벽 하나와 마스크 하나로

불안과 공포를 막지 못한 것처럼

사랑과 연민을 가리지도 못했기에

 

나는 속삭인다

너는 사람이라고

 

나는 말해본다

너를 사랑한다고

 

나는 소리친다

 

코로나도 불안감도 혐오심도

너란 사람을 너의 사랑을

우리의 서강을

끝까지 숨기고 가릴순 없다고

 

너의 가족이 보건소에 다녀오지 않을 날을 기다리며

가족이 보건소에 다녀오길 기다렸던 날이 있는 내가

 

8
4
댓글 2개
|
조회 303

익명2
2020/11/20 13:18
냉동
open comment context menu
잘해드려

익명3
2020/11/20 13:21
냉동
open comment context menu
글 정말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