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미건조한 기계음이 네 번 연속으로 울려
퍼졌다. 문을 여닫는 소리, 잠기는 소리, 신발을 벗는 소리가 지나가자 자취방에는 아무도 없는 고요만이 나를 반겼다. 침대에
쓰러지듯 눕고, 거슬리는 양말을 벗어 방바닥으로 던진다. 팔을
뻗어 냉장고 문을 연다. 월급의 1/10을 차지하는 수입맥주들만
가득하다. 캔의 뚜껑을 따다 아르바이트 도중 베인 손가락에 닿아 욕설을 했다.
자취방의
어둠에 눈이 점차 익숙해진다. 사회적 거리 두기로 인해 창문으로 들어왔었던 빛들 마저 사라져버렸다. 적막을 안주 삼아 늘어나는 우울함을 치워버리려 맥주를 한 입 마신다. 생각이
순환될수록 어둠은 점점 짙어지기에 차라리 취하는 것이 더 낫다.
아무런
맛이 느껴지지 않는다. 술이 약해 쉽게 취하는 것이 가성비가 좋구나 생각한다. 어느 새 식사에 맛이 사라졌고, 만나는 사람들도 없어졌다. 또 맥주를 한 입 마신다. 누군가는 나의 자취방 속에서도 블랑의
단 맛을 느끼고, 이불의 온기를 느끼며, 내일을 위한 생각을
하겠지. 자기계발서는 이 부분이 인생의 카타르시스를 위한 복선이라 하겠지만 주인공은 이 작품이 비극인지, 희극인지조차 모르는 법이며, 다른 누구의 불행보다 더 크게 다가온다.
무의미를
용납하지 않는 선천적인 기질과 무시와 기대를 등에 올려놓는 가족,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극복하지 못하는
용기. 생각은 일상의 한 숨결에서 불어나 어둠의 명도를 낮춰간다. 어느새
다 마신 맥주를 찌그러뜨리고, 다른 맥주를 꺼낸다.
친구. 친구들 중에는 잘되는 사람도, 못되고 있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그들에게 있어 나의 이야기는 아무런 것이 아니다. 잘되는
이들에게는 노력과 열정의 부족으로, 못되는 이들에게는 나의 일은 자신의 일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닌 것으로
치부된다. 익명의 게시판에서도 모든 상황의 원인은 나에게 있었다고 조롱을 담아서 말한다. 맞는 말이다. 남들이 하는 토익과 자격증을 따고, 인턴십에 지원해서 스펙을 쌓으며, 아르바이트를 통해 가족의 부담을
덜어준다면 취업은 확정적일 것이다. 그러나 무엇을 하면서?
차라리 심하게
아팠다면 좋겠다. 이 말조차 실례지만, 모든 부담을 회피할
수 있을 만큼 큰 병이 나도 모르는 사이 말기까지 진행되었으면 좋겠다. 책임을 덜어내고, 생각을 멈출 수 있을 만큼 심한 아픔이길 바란다. 지금 마시는 맥주
한 캔이 이런 삶의 목적에 도움이 되기를 간절히 소망한다.
캔을 비웠다. 일어나지 않을 행운에 대한 망상을 접는다. 내일도 목적없이 반복되는
인생을 걸어가야 한다. 당위들을 지키기 위해 자신을 자해하며 걸어갈 힘을 비축하고자 눈을 감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