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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선배님 안녕하세요. 저는 선배님의 서강대학교 후배입니다. 먼저 생신 축하드립니다.
선배님이 대통령 취임할 때가 생각납니다. 저는 그때 병장 2호봉이었군요.
대선 당시 저 역시 군대 내에서 투표를 했습니다. 저는 망설임 없이 선배님에게 표를 던졌습니다. 단순히 학교 선배라서가 아니라, 군대라는 환경 속에 있어서 그랬는지 저는 당시 보수의 정치 성향을 갖고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선배님이 취임하신 지 얼마 되지 않아 항공 잡지에 글을 하나 발견했습니다. 저는 공군을 다녀왔고 근무지에 해당 항공 잡지가 있었기에 심심풀이로 잡지를 읽곤 했습니다.
그 글은 잡지 편집장의 글이었습니다. 보통은 편집장으로서 한 달 잡지를 완성한 소회를 적는 글이 적혀있는 공간이지만, 그 달의 글은 편집장이 선배님의 취임식을 보며 느낀 소회가 적혀 있었습니다.
10년이 지난 지금, 정확한 워딩은 기억나지 않지만,
취임식에서 선배님이 오른손을 올려 경례를 했을 때 그 편집장님은 온몸에 전율이 일었났다고 했고, 너무 든든하다고 말했습니다. 그 외에도 선배님에 대한 찬양과 기대가 가득 적혀있었습니다.
마지막 문장이 압권이었습니다. 기독교 신자였는지 하나님을 언급하면서
"하나님, 훌륭한 대통령을 내려주셔서 감사합니다."
라고 글을 끝맺었습니다. 잡지의 편집장까지 한 사람이 선배님의 경례 한 번으로 막 취임한 대통령을 벌써부터 '훌륭한 대통령'이라고 부르는 것이 이해가 가지 않으면서도 웃기기도 했습니다만, 그만큼 선배님이 많은 사람들의 기대를 받았다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아시다시피 선배님의 대통령 여정이 순탄하지는 않았습니다. 웃는 게 매력적이었던 윤진숙 해양수산부 장관은 웃음거리가 된 채 물러나고, 장관이 교체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바다에서 소중한 국민들이 목숨을 잃기도 했습니다.(혹시 기억 못하실까봐 상기시켜 드리자면 그 날짜는 2014년 4월 16일입니다) 그나마 그 당시에 주무부서 중 하나인 해양수산부 장관을 전임 장관보다는 능력 있고 진정성 보이는 이주영 장관으로 교체한 것이 선배님의 탁월한 선택이었습니다.
해경을 해체한다는 담대한 결정을 발표하시면서 선배님께서는 눈 한 번 깜빡이지 않으셨죠. 그때 마른 눈에서 흘렀던 눈물의 무게를 다른 사람이 어찌 알 수 있을까요.
그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아 있었던 선거에서 여당 의원들이 고전적인 수법이었던 무릎 꿇고 읍소할 때도,
그 다음 해 메르스 대응을 매끄럽게 하지 못했을 때도,
여당의 원내대표를 선배님이 굳은 표정으로 배신자로 규정하고 친박 세력이 집단 린치해서 내쫓았을 때도,
미국의 눈치에 굴하지 않고 천안문에 올라 시진핑과 푸틴 옆에 섰을 때도,
저는 선배님에 대한 비판적 지지를 이어갔습니다.
하지만 저는 그 뒤 선배님에 대한 응원을 접게 되었습니다.
역사 교과서를 국정화한다는 결정은 저로 하여금 더이상 선배님에게 기대를 걸 수 없게 만들었습니다.
선배님이 대통령이 되시기 이전에 뉴라이트 행사에서 축사를 하셨을 때도, 심복이던 김무성이 역사 교육이 좌경화 되었다는 말을 꺼낼 때도 "바보 멍청이가 아닌 이상 역사 교과서를 건들지는 않겠지"라고 생각했습니다.
선배님, 저는 북한 정권을 싫어합니다. 자유를 억압하고 민주주의를 부정하며 다양성을 몰살하기 때문입니다. 선배님은 북한 정권을 좋아하시나요? 그게 아니라면 어째서 북한식 국정 교과서를 채택하려고 하셨습니까. 어떤 경우든 역사를 정권이 재단해서는 안 된다는 2005년 선배님의 국회 연설에 저는 절대적인 지지를 표합니다만, 어째서 대통령이 되신 후에 마음이 바뀌셨나요.
결국 2016년 총선에서 저는 새누리당을 찍지 않았습니다. 여당이 패배하는 것에 기쁨의 감정이 들었습니다. 공천 과정에서 친박과 비박이 이전투구를 벌였던 행태는 새누리당의 180석 획득을 운운하던 정치 평론가들에게 망신을 제대로 안겨주었습니다. 그 선거 결과는 그해 연말 대통령 탄핵 소추까지 이어지는 발판이 되었고, 그 발판을 마련해주신 선배님에게 감사함을 느낍니다.
부친이신 박정희 전 대통령이 보수의 시조라면, 선배님께서는 중시조에 해당하십니다. 박정희 전 대통령의 추종자는 물론이고, 전두환의 민정계, 김영삼 전 대통령의 상도동계, 심지어 반대 진영인 김대중 전 대통령의 동교동계의 일부까지 모두 결합하여 누구도 흔들 수 없었던 보수 빅텐트를 세웠으니까요.
하지만 저는 최근의 보수 세력의 정치인을 보며 혼란을 느낍니다. 현재 보수의 우두머리라고 할 수 있는 윤석열 대통령은 선배님을 영어의 몸으로 만들었던 핵심 인물입니다. 오죽했으면 선배님의 여동생이신 박근령 여사님은 선거 때 보수 진영 후보가 아닌 민주당의 이재명 지사를 지지했을까요.
선배님이 법무부장관으로 임명하시고 국무총리까지 올린 황교안 전 총리는 선배님을 대신하여 국가를 다스리던 시절, 허리가 아파 의자와 책상을 방에 넣어달라는 선배님의 요청을 들어주지 않았습니다. 어찌 그럴 수 있었을까요. 그 이후 보수 정당의 당대표를 맡아 총선을 다시 한 번 말아먹고 이번에 다시 당대표로 나온다고 합니다. 당원들의 마음을 얻기 위해 선배님의 생신이신 오늘 대구로 달려가 생신상을 차려드린다고 했는데, 선배님께서는 만나주지 않으셨죠. 선거의 여왕 다운 탁월한 선택이십니다.
그에 반해 선배님의 라이벌이었던 문재인 전 대통령은 선배님에게 의자와 책상도 넣어주시고, 임기 말에는 지지층에게 욕을 들으면서까지 선배님의 건강을 생각해 사면을 결정했습니다. 선배님을 대하는 태도 측면에서 보수 정치인들이 진보 정치인보다 못해서야 되겠습니까. 이러한 현실이 개탄스럽기까지 합니다.
올해로 벌써 선배님이 일흔 둘...아니, 윤석열 대통령의 통큰 결정으로 만 나이로 통용되니 오늘로 일흔 하나가 되셨군요. 백세 시대이고, 선배님보다 10살 이상 많은 이명박 전 대통령 및 김종인 전 비상대책위원 모두 아직 정정한 것을 보니 선배님도 아직 앞날이 창창하다고 생각됩니다. 앞으로 후배 보수 정치인들이 계속해서 선배님 사저의 문을 두드리며 선배님의 마음 및 선배님을 지지하는 국민들의 마음을 얻으려고 할 겁니다. 보수 정치인들이 그동안 선배님에게 잘해주지 못했지만, 너른 마음으로 그들을 따뜻하게 맞이해주시기 바랍니다.
선배님에게 서강대학교는 어떤 의미인가요? 선배님의 서강에서의 생활과 청춘은 즐거운 기억이셨나요? 선배님은 대통령 재임 시절 서강대 출신 인물을 잘 기용하지 않으셨죠. 이상하리만큼 성균관대학교 출신 인물을 장관 및 국무총리로 기용하셨습니다. 직장에서 서강대 출신들끼리 잘 안 뭉치는 문화가 선배님에게도 영향을 미친 것 같습니다. 선배님도 어쩔 수 없는 서강대학교 출신이신가 봅니다.
"그대 서강의 자랑이듯 서강 그대의 자랑이어라"
서강대학교의 슬로건인 이 문장은 1964년 처음 쓰였다고 하니, 70학번이신 선배님도 이 슬로건을 보셨을 거라 생각됩니다. 어떤 인생을 살았든, 대통령으로서 어떤 평가를 받든지 간에, 슬로건에서 "그대 서강의 자랑"은 바꿀 수 없는 전제이기에 선배님이 서강의 자랑임은 변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렇듯이 서강대학교 또한 선배님의 자랑이 되기를 바랍니다.
날이 여전히 춥습니다만, 봄이 가까워짐을 느낍니다.
항상 건강하시기를 바랍니다.
2023.0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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