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rtrait of Henry O. Tanner

Thomas Eakins, 1902
캔버스에 유채, The Hyde collection
초상화의 목적은 단순히 누군가의 모습을 오래 보존한다는 것을 넘어, 피사체가 가진 부, 권력, 특권이나 평판을 영원히 간직하는 것일 거야. 바로 이 초상화를 그림으로써, 스승 Thomas Eakins는 그의 제자 Henry O. Tanner에게 경의를 표하고 수많은 동료 미국화가들 중 그 누구도 알아보지도 못하고 알아보려 하지도 않았던 Henry의 독창적인 천재성을 기렸어.
이 초상화를 그린 초상화가는 Thomas Eakins. 그는 19세기 후반기에 최고의 미국인 화가 중 하나이자 영향력있는 교사였어. 그는 그림을 그리는 데 있어 다소 틀에 얽매이지 않는 방식으로 접근했고, 자연으로부터 직접적이고 신중한 관찰력을 지지했어. 이러한 성향으로 인해 그는 외과 수술을 하고 있는 인체를 관찰하게 되기도 해. 그의 제일 유명하고도 관습 타파적인 초상화 작품 중 하나가 필라델피아 외과의 Samuel D. Gross 박사의 임상강의 장면이야. 이 작품 속에서 박사는 반원형의 계단식 강의실에 있는 열정적인 학생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적나라한 수술 중간 과정을 설명하고 있어.

Eakins는 빠르게 국내 최고의 미술 학교인 펜실베니아 아카데미 오브 파인 아츠(Pennsylvania Academy of Fine Arts)의 교장 자리까지 올랐지만, 여학생들에게 남성 누드 모델을 보여주었다는 이유로 고소당한 후 교장 자리를 박탈당하게 돼.
초상화의 피사체는 Henry Osawa Tanner라는, 국제적인 명성을 떨친 최초의 아프리카계 미국인 화가야. 그는 1859년에 태어났고 아프리카 감리교 성공회의 주교와 도망친 노예의 아이였어. 처음에는 독학으로 그림 실력을 닦았다가, 미국사상 재건 시대(1865-1877) 동안 펜실베니아 아카데미 오브 파인 아츠 (Pennsylvania Academy of Fine Arts) 에서 Eakins의 학생이 되었어. 그 곳에서도 아니나다를까, 그는 동료 학생들에게 괴롭힘과 인종 차별을 당했어. 이후 동시대 미국 화가들 상당수처럼 유럽에서 학업을 마치고 싶었던 Henry는 세계 1차 대전 이전에는 세계 문화의 중심지나 다름없었던 파리로 갔어. 그가 파리로 간 이유에는 미국에서 겪은 흑인에 대한 편견어린 분위기를 견딜 수 없었기 때문도 있었을 거야. Henry 외 화가, 작가, 음악가를 포함한 많은 아프리카계 미국인 예술가들처럼, Tanner는 미국의 어떤 도시보다도 파리에서 더 환영받음을 알았고, 그의 독창적인 천재성을 인정받으며 성인 이후의 삶 대부분을 파리에서 살게 돼.
그는 프랑스 파리에 있던 예술학교 줄리안느 아카데미 (Academie Julian)를 졸업하고, 인체, 건축물, 그리고 풍경을 그려내며 서양 미술의 절정에서 역사적이고 종교적인 형상을 그려 내는 기법을 다루는, 숙련된 화가가 되었어. 이후 미국 백화점 업계 거부인 Rodman Wannamaker의 후원을 받아, Tanner는 팔레스타인으로 여행을 떠나게 돼. 그의 성서적이고 동양적인 장면이 담긴 작품들은 인정받은 데에는 부분적으로는 작품의 "신뢰성" 때문에 일 수도 있어. Henry O. Tanner는 실력으로는 인정받은 화가였거든.
이 초상화는 1902년에 Thomas Eakins가 집에서 짧은 기간 머무르는 동안 완성되었어. Eakins의 특별한 제자에 대한 개인적인 편애라고도 할 수 있겠다... Eakins는 그를 거쳐 간 학생 중 소수만 그렸던 것으로 잘 알려져 있거든. Eakins는 이 초상화를 죽을 때까지 그의 소지품으로 간직했어. 동시대의 수많은 예술가들은 그들의 인종적 편견 때문에 흑인이라는 이유로 Henry O. Tanner의 예술적 천재성을 알아보지 못했지만, Eakins만은 그의 천재성을 알아 보고 이 초상화에 영원히 남기게 돼. 초상화를 살펴 보면 Eakins는 일부러 고전 고대 시대와 르네상스 시대 최고의 예술가들이 알아 보는, 오랜 옛날부터 있었던 미술적 관습을 사용했어. Eakins는 Tanner의 이마에 따뜻한 빛을 채워서, 그의 속에 있는 독보적인 천재성이 그리스 신화 속 예술과 학문의 여신인 뮤즈의 선물임을 상징하고자 했어. 어쩌면 Eakins는 Henry의 초상화를 그리면서 시대에 핍박받아 빛을 보지 못한 제자에 대한 연민으로, 제자의 모습을 이토록 따뜻하게 그려낸 것이 아닐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