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담미술관] La Toilette

by 익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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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게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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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회 5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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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3/07 18:11
2020/03/07 18:11


La Toilette

Pierre Bonnard(1867~1947), 1914~1921년 경
119.5 x 79 cm, 캔버스에 유채 
Musee d'Orsay, Paris

 피에르 보나르의 작품 중 유명한 작품은 `흰 고양이`야. 이 작품은 한 번 쯤은 스쳐지나갔을 거라고 생각해. 어느 봄날, 흰 고양이가 막 낮잠에서 깨어 기지개를 펴는 모습을 기억하고, 그가 느낀 고양이의 따뜻하고 부드러운 나른함을 잘 묘사한 작품이야. 


 하지만 피에르 보나르가 화가로서 그의 일생을 걸쳐 뮤즈로 삼고 그려온 대상은 오직 한 여인이었어. 그는 여성의 누드를 즐겨 그렸는데, 그의 작품에서 거의 항상 찾아볼 수 있는 여인이야. 마르테 드 멜라니(본명 마리아 부르쟁) 이라는 여자였어. La Toilette에도, 그녀의 뒷모습을 그린 거야. 하지만 묘하게도, 우리는 여자의 벗은 몸을 보고 있지만 야하다는 느낌보다는 다양한 원색의 조합으로 빛이 만들어낸 광경이 신비롭게 다가와. 즉, 그의 작품의 주인공은 사실 작품 속 담겨 있는 구체적인 오브제 보다는 `색` 인 셈이야. 미술 작품 역시 하나의 언어라고 한다면, 피에르 보나르는 색의 조합으로 만들어 낸 작품을 매개로 자신이 전달하고자 하는 바를 말하고 있는 거지.

 그는 사실 변호사였어. 처음부터 화가로서 아예 길을 튼 건 아니야. 줄곧 관심만 갖고 있다가, 1889년 22세가 되던 해, 화가로서 새 출발을 하게 돼. 당시 프랑스 샴페인 광고를 위한 포스터 모집에 자신의 작품을 출품하는 것을 시작으로 화가로서의 인생을 시작했어. 뭣도 모를 초기에 그의 작품은 그 당시 유행하던 자포니즘, 즉 일본의 문화와 일본 판화에 전적으로 기대어 만들어지게 되었어. 무엇보다 그는 1888년 프랑스에서 활동하던 젊은 화가들이 모여 결성한 Les Nabis(나비파) 중에서도 피에르 보나르는 자포니즘에 앞장 선 화가였어. 하지만 곧 여느 화가들이 그러하듯이, 자신만의 화풍을 찾는 과도기를 거쳐 정립하게 돼. 

 *Les Nabis(나비파) : 1888년부터 1900년까지 프랑스 파리에서 활동한 젊은 예술가들로 구성된 그룹으로, 인상주의에서 추상화 스타일, 상징주의, 모더니즘의 초기 운동으로 사조가 전이하는 데 큰 역할을 한 그룹. 

 마침 1893년 그의 인생에 커다란 터닝포인트를 만나게 돼. 마르트 드 멜라니 라는, 정상적이라고 하기 어려운 여자를 만나게 된 거지. 이 여자를 만났을 때 그는 이미 약혼녀도 있었지만 그녀와 만나자마자 동거하게 돼. 그리고 이후 마르트가 죽을 때까지 약 400점에 가까운 그의 작품에 그녀가 등장해. 그렇다고 그녀가 엄청 당대를 대표하는 미인이었나, 그건 아니었어. 오히려 마르트 드 멜라니는 온갖 정신적인 병과, 육체적 병을 앓고 있던 숨기는 게 많은 여자였어. 심지어 그녀의 이름이 마르테 드 멜라니 가 아니라 마리아 부르쟁이라는 것도 혼인 신고를 할 때야 알았지. `de` 는 신분 상승을 꾀하던 여자들이 자신의 미천한 신분을 가리고 귀족적으로 보이기 위한 목적으로 붙이던 거였어. 마르테는 피에르를 만날 때부터 나이조차 속였어.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피에르는 그녀가 1942년 지병으로 죽을 때까지 그녀와 함께 살았어. La Toilette처럼, 피에르의 작품 속 마르테는 수많은 순간을 화장실이나 욕조에서 목욕을 하고 있어. 이는 마르테의 정신적인 병인 강박증 때문이기도 해. 

 그의 작품은 어느 순간부터 나비파의 성향을 떠나 그의 주변 일상의 모습을 담기 시작했어. 이게 말이 좋아 앵티미스트(Intimist), Intimism이라는 사조가 붙었지 정확한 이유는 그와 함께 있던 마르테의 신경증 때문이기도 해. 마르테는 그녀 본인 뿐 아니라 피에르조차도 남과 사교 행위를 하는 것 자체를 꺼려했거든. 피에르는 그런 그녀의 성향을 이해하고 끝까지 그녀의 옆에 있기를 자청한 세상 유일한 사람이었기에, 더욱 집착했을 걸로 보여. 하지만 작품의 이러한 변화로 피카소는 그를 진부한 화가라고 평가하기도 해. 실제 그가 살았던 시대의 미술계는 기존의 사조를 벗어나 모더니즘에 막 진입하기 시작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었고, 피카소가 보기엔 피에르는 다시 돌아간 거나 마찬가지니까. 그래서인지 피에르의 작품은 꽤 늦게 빛을 보게 돼.

 그렇게 탄생한 그의 작품은 현실보다는 꿈 같은, 몽환적인 잔상을 그린 것 같아. 피에르는 그의 윗대 화가들인 인상주의 화가들이 풍경과 씨름을 하며 작품을 그렸던 것과 달리, 그는 스쳐간 기억 속 오브제들을 꺼내어 오로지 기억을 바탕으로 색을 조합해 그렸어. 나는 꿈을, 그것도 다채로운 꿈을 자주 꾸는 편이라 그의 작품을 보면 약간 빛 바랜 듯 창백한 느낌을 담은 원색이 사람의 꿈과 닮아 있다고 감상하게 돼. 

 무엇보다, 작품 속 마르테는 늘 20대의 젊은 몸을 가진 여성으로 그려지고 있어. 이 작품은 물론 마르테가 분명히 젊었을 적의 모습이지만, 그 이후 그녀가 병이 들고, 병으로 죽은 그 해의 작품에서도 그녀의 몸은 여전히 젊은 20대 여성의 몸을 하고 있어. 나는 사실 피에르가 마르테를 어떻게 보았을지는 잘 이해가 되지 않아. 정말 사랑했을지, 아니면 그의 소심한 성격 탓에 마르테의 병수발을 들다 그게 일상이 되어 익숙해져 버린 건지, 잘 모르겠어. 하지만 피에르의 수많은 작품 속에서 여전히 젊게 살아 숨쉬는 마르테를 보면, 피에르는 마르테의 존재가 있었기에 그만의 독특한 예술적 창작력을 발휘할 수 있었고 병들어 시들어가는 그녀에게 자신의 환상과 연민을 동시에 찾은 게 아닐까... 생각이 들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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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10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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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회 589

익명1
2020/03/07 18:25
냉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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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관 다미 오랜만이야!

글쓴이
2020/03/07 18:26
냉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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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가웡ㅎㅎㅎ

익명2
2020/03/07 18:33
냉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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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운드숄더다

글쓴이
2020/03/07 18:38
냉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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엌ㅋㅋㅋㅋㅋㅋㅋ 물리치료사인가요 어떻게 그걸 캐치하짘ㅋㅋㅋㅋㅋ

익명3
2020/03/07 18:47
냉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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넘 재밌다 항상 고마워 좋은 하루 보내

글쓴이
2020/03/07 18:50
냉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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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밌게 읽어주셔서 고맙습니다 :) 좋은 하루!

익명4
2020/03/07 18:54
냉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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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이야 ' 오늘도 유익하군 !!

글쓴이
2020/03/07 18:57
냉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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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 영광이야..><ㅋㅋㅋ앞으로 수준높은 유익다미가 되도록 노력할게 ㅋㅋㅋ

익명5
2020/03/07 19:57
냉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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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이얍!!! 오늘두 정독!!

글쓴이
2020/03/07 21:09
냉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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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이얌~! 중간에 비문 같은 게 있어도 이해해 주라ㅋㅋㅋ 이렇게 글 쓰는 것도 오랜만이다 보니 평소 말투로 쓰게 되네 ㅋ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