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베레시차긴은 8살 때 가족의 희망에 따라 러시아 북부 차르스코예 셀로에 있는 알렉상드로비치 소년 군학교에 입학했어. 그 곳에서는 그는 상트 페테르부르크에 있는 해군 학교로 진학했고 1858년 최초로 항해를 하게 돼. 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군대 교육에 대한 그의 불만은 커져만 갔고, 결국 그의 예술적인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해 군을 떠나게 된다. 애초에 재능이 있었던 그는 오래지 않아 상트 페테르부르크 미술 학교에서 "Ulysses slaying the Suitors(구혼자들을 죽이는 율리시스)"이라는 이름을 붙인 그의 작품으로 상을 받게 돼. 또 베레샤긴은 파리의 자부심있는 에꼴 에 보자르의 저명한 오리엔탈리스트 장 레옹 제롬의 수하에서 간단히 수학하게 돼. 베레시차긴의 작품에 녹아 있는 제롬의 영향력은 복잡한 디테일과 빛을 뛰어난 기법으로 묘사하는 것에 주의를 기울이면 찾아볼 수 있어. 이로 인해, 19세기에 베레시차긴은 전쟁을 사실적으로 묘사하기로 제일 유명한 화가가 되었지. 구글에 검색해도 나오는 대부분의 그의 작품은 전쟁을 배경으로 하는 작품들이야.
베레시차긴은 10년 이상의 세월을 광범위하게 여행하면서 수많은 이국의 땅을 밟았어. 그렇게 그려진 작품들은 이 뛰어난 예술가의 경이로운 삶과 여행의 일대기를 오리엔탈리즘의 방식으로 보여주고 있어. 1874년에는, 베레시차긴과 그의 아내는 2년 간의 인도 원정을 떠나기도 했어. 여행은 어려웠고 여행길에서 많은 장애물과 맞닥뜨려야 했지만, 그는 히말라야 산맥의 자연 풍경의 강렬함에서 심오한 의미를 발견했고 이 여행으로 150점 이상의 스케치를 남겼어.
비록 전쟁을 그린 작품으로 제일 잘 알려져 있지만, 베레시차긴은 이 작품처럼 평화로운 풍경을 묘사하는 데에도 뛰어났어. 이 그림 속에서는, 베레시차긴은 능숙하게 뒷 배경에는 눈으로 덮힌 그레이트 히말라야 산맥을 펼쳐 놓았고, 앞 부분에는 고요한 초록색 잎과 덤불들을 무성하게 깔아 두었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