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담미술관] Girl Student

by 익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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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게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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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회 36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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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ne
2020/08/30 16:19
2020/08/30 16:19

Girl Student

Nikolai Yaroshenko, 1883, 131x81cm, oil on canvas
Realism, Kaluga Museum of Fine Arts, Russia

 명화 속에는 그 시대의 독특한 문화가 녹아 있고, 그 중 일부인 '복식'는 꽤 흥미로운 소재야. 내로라하는 디자이너들이 과거의 의상에서 영감을 얻기도 하고, 그들이 만든 유행이 현대의 복식사를 만들어나가고 있을 정도이니까! 위 그림은 제목대로 한 여학생의 모습을 사실주의로 그려낸 작품이야. 그녀는 그 당시 군인들이 쓰던 우샨카처럼 생긴 모자와, 주로 남자들이 입고 다니던 조끼, 약간 지저분한 스커트, 낡아 빠진 숄, 파리한 안색과 굳은 턱, 목적없이 방황하는 기색과 지침과 환멸 같은 온갖 감정이 뒤섞여 생기없이 멍한 눈을 하고 있어. 상트 페테르부르크의 안개 속에서 책을 소중히 품에 안고 비가 오는 거리를 걷고 있어. 그녀의 머리카락은 짧고, 당시 여성의 전유물 중 하나였던 코르셋이나 치마를 부풀리는 용도로 쓰던 속옷도 입지 않았을 뿐 아니라 모자에 장식용 꽃도 꽂지 않았어. 그녀가 지금 허리에 두르고 있는 허리띠 역시 남성용 허리띠이지. 모든 것이 오로지 실용성과 시간을 절약하기 위한 간편함을 추구한 복장이야. 유일하게 흰 부분인 셔츠의 카라 부분은 책의 밝은 부분으로 눈길을 이끌어.

 비록 그림인 만큼 멈춰 있지만 자유로운 오른손의 움직임 때문일까? 당당하게 걷고 있음을 짐작할 수 있어. Bestuzhev Courses는 러시아 제국 최초의 여성 고등 교육 기관으로, 수업이 오후 7시에 시작해서 9시에 끝났기 때문에 그림 속 시간적 배경은 낮 같겠지만 사실 밤이야. 낮에는 여성들도 생계를 위해서, 또 돈을 벌기 위해서 일을 해야지! 장학금 제도가 존재하지 않았고 Bestuzhev Courses는 그다지 지원이 안정적이지 못했기 때문에, 학교를 다니고 싶은 여성들은 직접 등록금을 내야 다닐 수 있었어. 이 그림의 모델이 된 사람은 실제 인물이야. 그녀의 이름은 Anna Diterikhs로, 우리가 최소한 이름은 들어 봤을 러시아 문학의 거장 양대산맥 중 한 명인 레프 톨스토이의 절친한 친구와 결혼했다고 해. Nikolai Yaroshenko는 Anna의 실제 모습을 그린 건 아니야. 하지만 그녀가 Bestuzhev Courses를 다녔던 학생이었기 때문에 그녀의 모습을 빌어 당시 고등 교육을 받는 여성의 모습을 일반화하여 그리고자 했어. 

 이 별 것 아닌 그림이, 발표되었을 당시에는 상당히 반응이 뜨거웠어. 1883년에 그려졌는데 이 때가 19세기 후반이잖아. 19세기 중엽부터 러시아는 혼란의 시기였어. Nikolai Chernyshevksy의 '무엇을 할 것인가'라는 사회주의 소설이 있는데, '베라 파블로브나'라는 여성이 나와. 그녀는 이전까지 여성에게 강요되던 모성애 등의 가치에서 벗어나 자기자신의 목소리를 내며 살아가게 돼. 이 모습은, 19세기 중엽부터 러시아 사회 개혁을 둘러싸고 불거진 여성 해방 문제에 대해 등장한 수많은 러시아 여성들의 한 모습이었을 거야. 비록 이들이 주장한 여성의 시민적 자유와 교육권 등은 러시아의 체제와는 좀 어긋나는 문제였기 때문에 윗사람들이 폄하하는 경향이 없진 않았지만. 여기서 이 그림이 고등 교육을 받는 여성을 최초로 그린 작품이라는 이유로 구설에 올랐다고 해. 그게 좋은 쪽일지 나쁜 쪽일지는, 이 글을 읽는 다미들의 판단에 맡길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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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30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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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회 3678

익명1
2020/08/30 16:24
냉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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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관 다미는 그림만 잘 아는게 아니라 이런저런 상식도 많아서 더 대단한 듯

글쓴이
2020/08/30 19:15
냉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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ㅎㅎ...과찬이야 재밌게 읽어주면 내가 더 고맙지

익명2
2020/08/30 16:26
냉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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삭제된 댓글입니다

글쓴이
2020/08/30 19:23
냉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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짧지만 강렬한 감상평이었따! ㅋㅋㅋㅋㅋㅋㅋ

익명3
2020/08/30 16:45
냉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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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짜 미술작품은 그림자체만보는거보다 이런 배경을 알고보면 더 많이 보이는듯

글쓴이
2020/08/30 19:16
냉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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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치 그럼! 감상에 있어 배경지식의 중요성을 알아 가는 다미가 있어서 마냥 기쁘다ㅋㅋㅋㅋ

익명4
2020/08/30 17:22
냉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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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박추

글쓴이
2020/08/30 19:17
냉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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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감사! 재밌게 읽어주면 더 감사! :)

익명5
2020/08/30 17:59
냉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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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추

글쓴이
2020/08/30 19:16
냉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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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ㄱㅅ ㅋㅋㅋㅋㅋㅋ

익명6
2020/08/30 18:25
냉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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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제가 많은 듯한 눈빛이군...

글쓴이
2020/08/30 19:15
냉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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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만 아니었어도 교정에서 많이 보였을 표정인데...

익명7
2020/08/30 18:31
냉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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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녀 스웨인

익명8
2020/08/30 19:12
냉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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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적추

글쓴이
2020/08/30 19:17
냉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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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아 부끄럽다...ㅋㅋㅋㅋㅋㅋㅋㅋ 감사요!

익명9
2020/08/30 19:56
냉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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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 미술의 역사와 감상 체험판같다 재밌당

글쓴이
2020/08/30 22:23
냉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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엌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사실 나는 서미감을 들어본 적이 없어..ㅠㅠㅠ 전한호 교수님 강의가 그렇게 괜찮았다고 주변사람들이 그러던데 가신 지 오래 되어서...ㅠㅠㅠ아쉽구만

익명10
2020/08/30 20:13
냉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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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예쁘다..

글쓴이
2020/08/30 22:22
냉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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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10다미의 감수성이 흐르는 댓글~!! :)

익명11
2020/08/30 20:34
냉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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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주올려줘 넘 유익하고 재밌어...

글쓴이
2020/08/30 22:20
냉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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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샤! 꾸준히 올려보도록 노력할게 :D

익명12
2020/08/30 20:34
냉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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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미야 나는 미술관을 별로 안좋아했는데 해외 여행 가서 미술관을 갈 때마다 뭔가 아쉽고 그러더라고. 해외여행을 가려면 아직은 멀었지만, 작품에 관한 배경이라던지 이런 이야기들을 쉽게 접근할 수 있는 방법이 있을까? 책을 좋아하긴 하는데 책 추천해줄 수 있으면 몇 권만 부탁해도될까? 항상 올려줘서 너무 고마워!

익명13
2020/08/30 21:02
냉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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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자 나두궁금해!!

익명15
2020/08/30 22:01
냉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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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두!!3333

글쓴이
2020/08/30 22:19
냉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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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고 내가 답이 늦었다ㅠㅜ 나는 사실 책보다는 실무? 로 그런 걸 익힌 편이야..그래도 그 기간동안 많이 도움이 되었던 책이 있는데 그게 이주헌 선생님이 쓰신 '서양화 자신있게 보기'랑, 곰브리치 서양미술사는 거의 미술사의 개념서고 해서...이 둘을 많이 봤고 지금도 제일 아끼고 자주 펼쳐보는 책이야! 이 두 권 추천할게!!

익명13
2020/09/02 01:22
냉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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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왕 정보고마워 나도 글들 잘보고있다미~~~

익명14
2020/08/30 21:54
냉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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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미 안뇽!

글쓴이
2020/08/30 22:20
냉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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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뇽! :) 난 이런 짤막하고 친근한 인사가 좋아ㅋㅋㅋㅋㅋㅋㅋㅋㅋ너 혹시 내 친구니??

익명14
2020/08/30 22:41
냉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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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에 담챗에서 본 고냥이얌!ㅎㅎ

익명16
2020/08/30 23:57
냉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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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너무 좋다. 구독은 어디서 하면 되나요!

익명17
2020/08/31 02:36
냉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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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미학이여!
철학의 사치는 더 행복한 법이죠
내가 주인공이 된 기분이니까,